영화 '뜨거운 피'를 통해 첫 누아르 원톱 주연에 도전한 배우 정우가 '성장통'을 겪으며 또 한 단계 나아갔다. 주연의 혹독한 무게를 견뎌낸 정우다.

최근 영화 '뜨거운 피'(감독 천명관)의 배우 정우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뜨거운 피'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 정우는 '뜨거운 피'에서 건달 '희수' 역을 맡아 캐릭터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연기를 선보였다. '손영감'(김갑수 분) 밑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며 '구암'의 실세가 된 '희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구암'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가장 크게 흔들리는 인물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고 끈질기게 부딪치며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는다.

정우는 "어려운 시국에 개봉하는 게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를 기다려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마음"이라며 "'뜨거운 피'라는 영화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선택했다. 제가 누아르 장르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제가 하면 정우 식의 누아르가 어떻게 표현될지, 어떤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선택을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본을 보기 전에 주변에서 추천을 많이 받았다. 감독님이 소설가로 유명하시고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팬층이 아주 두텁더라. 제작사 대표, 감독님들이 이 작품에 대한 추천을 많이 했다"라며 "배경이 부산이고, 부산 사투리나 기존에 제가 보여줬던 모습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의문도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전형적인 느낌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근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본능적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작품이라는 게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크게 영향을 줬던 부분이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정우는 누아르 장르의 톤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긴장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싶었다. 장르의 톤을 잡는데 집중을 많이 했다"라며 "대사가 가벼워보이지 않고, 떠보이지 않게 대사들을 집중해서 읊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서 그 공간과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일치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대사를 반복해서 내뱉었던 것 같다"라며 "'희수'가 처음에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중, 후반부에는 감정이 고조되면서 욕망이 쌓여 점점 괴물로 변하게 되는데 그때의 감정이 잘 전달될 수 있게끔 톤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라고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또한 정우는 "한 인물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극의 톤이 달라지니까 어깨에 힘을 주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잘 표현해야 했다"라며 "제작진들은 술과 담배에 절어있는 모습을 원했는데 저는 푸석푸석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제작진이 생각하는 '희수'와 제가 생각하는 '희수'의 중간점을 찾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정우는 '뜨거운 피'에서 자신의 모습이 섹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는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무겁게만 보이지 않고 유머러스함도 섞으면 후반부에서 감정의 진폭이 더 크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희수' 캐릭터를 이해하면 할수록 날이 섰고, 조금은 예민해지고 쓸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부산 출신인 정우는 영화 '바람', '이웃사촌',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등 여러 작품에서 맛깔나는 부산 사투리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반복되는' 연기라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으로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우는 "처음 서울에 와서는 표준어를 써야 했다. 내가 뛰어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많이 기억해 주시는 작품들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투리는 저의 장점이자 장기다. 이번엔 어떻게 또 장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제 사투리를 좋아해 주시니까 저 역시도 연기하는 데 있어서 힘이 나고 감사하다"라며 "사투리는 디테일 싸움이다. 배우들이 연기할 때 사투리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이 말투가 맞는지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음표가 뜨는 순간 확신이 흔들리고, 또 확신을 가지고 연기하지 못하면 관객들도 설득하기 힘들다. 저는 부산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담감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사투리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큰 부담감을 느꼈다. 어렵게 출발선에 선 영화의 원톱 주연을 맡은 정우는 마냥 즐기면서 촬영에 임할 수 없었다. 정우는 '희수'를 연기하면서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하시고 대본만 보고 있지 말고 나와서 바람도 쐬고, 술도 한 잔 마시고, 바닷가에서 산책도 하면서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뜨거운 피'가 적은 예산의 영화는 아니었다. 중간에 영화를 진행하면서 투자 부분에서도 난항이 있었고, 그 진행 과정을 제가 알지 못했다면 편하게 촬영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원톱 주연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잘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고, 투자자들, 제작자들에게 주연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정우는 "한국 영화가 어려운 시기인데 예전 같으면 쉽게 투자 받을 감독님, 배우들도 쉽게 투자되지 않는다. 제작되는 한국 영화가 많지 않다"라며 "'뜨거운 피' 시나리오 자체가 전형적인 상업 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 옆에서 부담감을 가지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연기만 즐기면서 하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까 연기를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익숙함을 가지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해 집중했다. 시나리오가 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라며 "감정 표현에 있어서 눈이 중요한데, 영화 속에서 '희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맑은 눈이 없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은 날은 더 불안했다. 맑은 눈으로 연기를 하면서 전 장면의 눈과는 연결이 안 되고 튈 거라는 걱정이 들더라. 볼은 홀쭉해야 해서 전날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제대로 못 먹었다. 근데 대본에 집중하다 보면 입맛도 없더라"라고 덧붙였다.

정우는 '뜨거운 피'에 대해 '가장 큰 성장통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그동안 제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저한테 성장통을 준 작품이 있다. 많은 분들은 '바람'과 '응답하라 1994'를 기억해 주시는데, 영화 '스페어'나 '재심', 최근 '이웃사촌'도 저에게 큰 성장통을 준 작품이다. 그런데 이제는 '뜨거운 피'가 저에게는 가장 큰 성장통을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작품 성격에 따라서 대본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고, 감독님에게 에너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희수'는 굉장히 쓸쓸했다. 캐릭터를 이해하면 할수록 안타까웠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유독 저를 성장시켜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